![[여행 에세이] 파리의 가을 벤치에서, 잠시 멈춰본다](https://img1.daumcdn.net/thumb/R750x0/?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unTGr%2FbtsOahLLS0z%2FhcqImkZivhlu8QpMO7jX20%2Fimg.png)
“가을의 파리에 마음을 앉히다”
가을빛이 고요히 번지는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
그곳의 벤치에 앉았을 때, 시간은 이상하리만치 느리게 흘렀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조용히 걸어가고, 바람은 꽃과 낙엽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며 말을 건넸다.
도시의 중심임에도 이곳은 도시가 아닌 것처럼, 마치 따뜻한 환상 속 정원 같았다.
그날 나는 아무 계획도 없이 카메라 하나를 목에 걸고 파리를 걷고 있었다. 그렇게 이끌리듯 뤽상부르 공원으로 들어섰다. 길게 뻗은 가로수길, 무심히 피어난 가을꽃, 그리고 잔잔한 회색 하늘 아래 놓인 철제 벤치들.
마치 파리라는 도시는 여백을 아는 도시라는 듯, 그 여백이 오히려 마음속 풍경을 채워주는 기분이었다.
벤치에 앉아 가만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꽃밭을 스치는 연인,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 책을 읽는 노인, 그리고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천천히 걷는 이들.
그들 모두가 이 도시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졌다. 나도 이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카메라를 무릎 위에 얹고, 등을 기대어 하늘을 바라봤다.
잎이 조금씩 색을 바꾸는 나무들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여기까지 잘 왔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낯설지 않은 온도로 나를 맞이해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란, 반드시 무엇을 보고 남기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 가끔은 이렇게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것.
마치 인생도 그렇듯이 말이다. 빠르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누구보다 앞서야 할 이유도 없고, 누군가에게 증명해야 할 이유도 없는 순간이 존재한다.
그 순간은 파리의 벤치 위에서 찾아왔다. 내가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시간과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순간. 바삐 달려온 내 삶의 페이지들 사이에 남겨진 여백이자 쉼표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나를 찍기 위해 셀프 타이머를 누른 것이 아니라, 그날의 공기를, 느낌을, 기억을 함께 담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이 사진을 다시 볼 날이 오겠지.
그리고 나는 다시금 그 벤치에 앉아 있는 나를 떠올릴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온전히 느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다시 나를 앞으로 걸어가게 만든다.
바로 그 순간, 파리의 가을 벤치 위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났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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